::: 허선문(許宣文)  :::


837년 ~ ?.
허선문(許宣文)은 김수로왕비 보주태후(普州太后) 허씨의 30세 손으로
고려조 고려개국벽상공신(高麗開國壁上功臣)이었으며 양천허씨의 시조(始祖)이다.
허선문 설단지의 비석
대대로 공암현(孔巖縣:공암은 서울 양천의
옛 이름)에 살면서 농사에 힘을 써
거부가 되었다.

마침 고려 태조가 후백제 견훤(甄萱)을
정벌할 때 군량이 부족하여 위기에 처했는데
군량을 보급하여 군의 사기를 회복케 하여
견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왕건은 그 의 공을 크게 치하하며
가부(假父)라 칭하고 공암을 식읍으로
하사하였으며 공암촌주에 명하고
시호를 장경(壯景)이며
이로 인하여 본관을 공암(=陽川)으로 하였다.

양천은 경기도에 있는 지명으로 원래
고구려때의 제차파의현을 통일 신라의 경덕왕때
공암현으로 고쳤다.
1310년에 양천현으로 개칭되어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 내려 오다가 1914년
경기도 김포군에 흡수 되었다.

기록에 보면 99세를 넘기도록 살았다고 하니
그 시대의 평균수명과 비교해 볼진대
대단한,신선같은 삶을 살았다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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