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허씨의 본관은 [조선씨족통보]등의 문헌에 59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그것은 세거지(世居地)일 뿐이며 현존하는 본관은 양천(陽川)·태인(泰仁)·하양(河陽)·김해(金海) 4본이 관향으로 되어 있다. 양천허씨는 조선조에서 20대 명족(名族)으로 손꼽혔으며 비록 많지 않은 인구로서 많은 인물을 배출하여 명문으로서의 지위를 굳혀왔다. 또 인천이씨(仁川李氏)도 허씨에서 갈려나온 성씨이다. 신라 경덕왕(756년)때 허기(許奇)가 사신으로 당나라에 갔을 때 마침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자 현종(玄宗)을 호종하여 그 공으로 당나라 황실의 성(姓)인〈李氏〉를 사성받고 소성백(邵城伯:소백성은 지금의 仁川)에 봉해져 인천이씨의 연원을 이루게 되었다. |